[노컷 리뷰] '설화수' 광고 - '아름다움은 자란다' 편

(사진=광고화면 캡처)
여자의 아름다움이 언제부턴가 V라인, S라인 등 해괴한 이름으로 포장되고 있다. 사회와 미디어가 정한 이상한 기준이다. 누군가가 규정한 대로 여자가 아름다워야만 하는 건 아니다. 여자는 자신이 규정하는 대로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가질 수 있다.

최근 설화수가 내놓은 다섯 편의 '아름다움은 자란다' 광고가 눈길을 끌고 있다. 바이올리니스 정경화, 배우 이정은, 모델 겸 방송인 송경아, 가수 겸 기타리스트 황소윤이 나와 각자가 생각하는 아름다움, 자신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한다.

흔히 화장품 광고라 하면 브이(V)라인 얼굴형에 주름 하나 없이 깨끗하고 하얀 피부 탄력을 강조하고, 그런 외모를 갖기 위해 우리 제품을 사용하라고 한다. 이번 광고는 그런 흔한 화장품 광고 클리셰를 피해간다. CG를 이용해서라도 지우려 애썼던 주름진 얼굴도 그대로다.

사회와 미디어가 규정한 현실과 동떨어진 미적 기준을 들이대고 젊을수록 아름답다는 물리적 규정을 역행하는 것이다. 아름다움을 외모로 규정하지 않는다. 내가 가진 것을 부정하게끔 했던 것과 달리 '아름다움은 자란다' 광고는 자신의 얼굴과 몸을 긍정한다.

눈빛과 표정, 시간이 만들어 낸 자신의 얼굴이 좋다고 한다. 자신의 시간이 쌓여 '나'라는 존재를 만들었고, 그 존재가 아름답다고 한다. 좋은 것도 한때라는 통념에 반대한다. 20대가 아닌 나이에도 좋은 것을 할 수 있고,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 삶이 꽤 괜찮을 거라 말한다. 그 나이만이 가지는 아름다움이 존재함을 말한다. 나이를 먹는 것은 아름답지 않은 시간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 내가 깊어지는 과정이라 말한다.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이처럼 자신이 정하기 나름이고, 무엇을 '아름다움'이라 규정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그렇게 말하는 정경화, 이정은, 송경아, 황소윤은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은 사회와 미디어가 규정한 기괴한 것이 아닌 '아름다움'이라는 단어가 지닌 본래 뜻을 말한다. 20대, 40대, 50대, 70대 다양한 목소리로 말하는 '나'는 아름답다.

(사진=광고화면 캡처)
물론 페미니즘을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는 비판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본연의 자신을 긍정할 수 있는 메시지를 던지는 광고가 나온다는 게 미디어에 변화를 주문하는 신호인지도 모른다.

소비 주체 중 하나가 여성이고, 그 여성은 변화하고 있다. 그런 변화의 흐름에 발맞춰 가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여성이, 여성 소비자가 끊임없이 그 존재감을 알려야 한다. 이런 목소리가 광고주를 압박하다 보면 조금씩 변화할 것이다. '소녀답게'가 말하는 것이 '나답게'임을 알렸던 P&G 올웨이즈 광고가 나온 것처럼 말이다.

책 '부드럽게 여성을 죽이는 법'의 저자 진 킬본은 "냉소주의는 비판과 다르다. 비판보다 훨씬 쉬운 것"이라며 "사실 냉소주의는 일종의 순진함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비판 정신은 기르고 냉소주의는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에 열린 '그 광고가 왜 성차별적이냐구요?' 토론회에서 박정화 인디CF 대표는 "마케팅 콘텐츠 모든 요소, 아주 세부적인 것까지도 광고주에 의해 결정된다. 그만큼 광고주의 영향력이 막강하다"며 "광고의 목적은 매출을 극대화하는 것인 만큼 광고를 바꾸고 싶으면 그 광고로 돈을 못 벌게 하면 된다. 소비는 자본주의의 투표라 생각한다. 현명한 소비자가 기업을 가르칠 수 있고, 기업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지금 필요한 건 광고에 대한 냉소주의보다 우리가 어떤 제품을 소비하거나 하지 않음으로써 광고주를 비판하고 변화시키는 일일 거다. 더 이상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고 수동적인 존재로 그리는 태도는 여성 소비자에게 수용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린다면 조금씩이나마 기울어진 지형이 바로잡힐 거라는 희망을 품어본다.

그런 의미에서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과 여성의 아름다움을 한정적으로 규정한 틀을 벗어나려고 시도하는 '아름다움은 자란다'와 같은 광고에 조금은 힘을 실어줘도 되지 않을까 싶다. 여성의 아름다움은 다양한 모습을 가졌고, 여성을 '존재'로서 바라볼 때 우리는 그 제품을 소비할 것임을 알리는 의미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