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가영 "더 많은 발칙성과 친절한 재미 주는 영화 만들 것"

[여성 감독 강좌 시즌 2-⑥] '비치온더비치'-'밤치기' 정가영 감독

"여성 감독들도 역사의 무게가 쌓이지만 여성 감독이 자기 작품을 깊이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은 영화제 정도로 한정되는 것 같다." 한국예술종합학교 트랜스: 아시아영상문화연구소 김소영 소장의 말이다. 지난해 여성 감독의 '현재'를 살피고 그들이 가진 고유의 작가성을 탐구하기 위해 마련됐던 '여성 영화감독 초청 연속강좌'가 시즌 2로 돌아왔다. 3월 13일부터 4월 24일까지 총 6명의 여성 감독을 만나보자. [편집자 주]

정가영 감독 (사진=레진엔터테인먼트 제공)
데뷔작 '혀의 미래'부터 최근작 '밤치기'까지 다른 사람의 입장을 헤아리기보다는 자기 욕망에 충실한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을 선보인 정가영 감독. 그래서일까. 왜 유혹해서는 안 되는 사람에게 마음을 품고 수작을 부리는 이야기를 계속하냐는 질문을 자주 들었다.

정가영 감독은 "갈등이 생기기 너무 쉽지 않나. 그래서는 안 되는 사람을 좋아하고 꼬시게 됐을 때의 긴장감이 너무 좋고, 그게 관객들에게도 전달되지 않을까 생각했다"라고 답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데 동시에 다른 사람을 좋아할 때, 애인이 있는 사람을 좋아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으니 그때마다 열심히 고민했다는 게 정 감독의 설명이다.

이런 고민은 남들에게도 고민일 수 있으니 이런 걸 영화에 담아보자는 마음으로 영화를 찍었다. 정 감독 표현에 따르면 "욕망이 불끈불끈한 캐릭터가 본인 욕망을 따라가는 장편, 단편"을 꾸준히 선보인 이유다.

24일 오후, 서울 성북구 석관동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114호에서 '여성 영화감독 초청 연속강좌' 시즌 2 마지막 강의가 열렸다. 이날은 '비치온더비치', '밤치기'를 만든 정가영 감독의 작품을 분석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정 감독은 '혀의 미래', '처음', '내가 어때섷ㅎㅎ', '비치온더비치', '밤치기', '조인성을 좋아하세요' 등 그동안 연출한 작품 대부분에 직접 출연해 연기도 했다.

실명과 같은 이름의 캐릭터가 나오고 그걸 본인이 연기하니, 꾸며진 가상의 이야기인지 실제 이야기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픽션인 듯 현실인 듯 경계선을 타는 이야기를 만든 계기는 무엇일까.

정 감독은 "영화로 빨리 성공하고 싶은데 어떤 얘기가 재밌을까 궁리하다 보면 내가 겪었던 일을 쓸 때가 재미있더라. 관객분들도 좋아해주는 것 같고"라고 말했다.

연출과 연기 두 가지 역할을 수행하는 이유로는 일단 '재미'를 꼽았다. 정 감독은 "'혀의 미래' 때 처음 출연해 봤는데 너무 재밌는 거다. 영상에 나오는 것도 신기하고"라고 답했다.

하지만 현재 준비 중인 세 번째 장편영화 '하트'에서 주연을 맡으면서 연기의 어려움을 실감했다고 한다. 그는 "'하트'도 저랑 비슷한 캐릭터이긴 한데 어떤 일 때문에 너무 힘들어하는 캐릭터다. 저는 이미 그 힘듦에서 빠져나온 상태인데 또 그걸 연기로 하려니 못 해 먹겠더라. 그래서 술을 엄청 많이 먹었다"고 전했다.

정가영 감독의 장편영화 '밤치기'와 '비치온더비치' (사진=각 제작사 제공)
'밤치기'의 주연 배우로 호흡을 맞춘 박종환에게 "왜 이렇게 연기가 힘들어? 못 하겠어"라고 하소연하기도 했다고. 그때 박종환은 연기하다 감정적으로 힘든 지점이 있으면 배우와 감독이 서로 싸우면서 온도를 맞춰가야 하는데, (정 감독은) 두 개를 다 하려다 보니 굉장히 외로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고.

정 감독은 "편집기사님도 '감독님, 유독 컨디션이 안 좋았던 것 아니냐'고 하셨었다. 너무 연기가 안 나오니까. 장편에는 그만 출연할 것 같다. 단편에서는 소소하게 연기하고 싶을 때 할 것 같다"고 부연했다.

영화 편집점은 어떻게 판단하는지 묻자, 정 감독은 "연기를 제일 많이 보는 것 같다. 두 사람의 호흡에서 나오는 긴장? 그 공기가 제일 좋은 컷이 보통 OK 컷이 됐던 것 같다. 은근히 첫 테이크가 많더라. '리허설 겸해서 가 봅시다' 한 것들이 제일 자연스럽게 담길 때가 많아서"라고 밝혔다.

발칙하면서 긴장감과 유머를 겸비한 영화 내용에 비해 화면 구성이 단순하다는 반응에 대해서도 솔직한 답을 내놨다. 우선, 프로덕션 특성상 자본이 제한돼 있었기에 짧은 시간 내에 찍어야 했다고.

정 감독은 "제가 콘티 구성 능력이 없었다. 그림 보는 감각이 저한테 없었다"면서 "내용이 재밌으니까 (화면은) 단순해도 괜찮겠지 생각했는데 지루했다는 반응이 적지 않게 나와서, 사람들이 그림을 (집중해서) 보는구나 생각해서 그림에도 신경 써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준비한 '하트'부터는 달라졌다. 촬영감독과 만나 콘티를 짜고, 장소도 여러 군데 가 보고, 혼자서 매일 연출 공부를 하고 있다. 상업 영화 한 편의 소리를 끄고 그림만 보면서 전체적인 흐름과 촬영, 미술 쪽의 포인트를 찾는 방식이다.

'하트'는 정 감독이 각본을 쓰지 않은 작품이다. 정 감독은 "지금은 다 제가 직접 쓴 영화였다. 상업영화를 해도 당연히 제가 각본 쓰겠지, 써야지 했다. 자기가 각본 안 쓰는 감독은 글 못 쓰니까 그러는 거겠지 생각했다"고 밝혔다.

또한 다른 사람이 쓴 각본을 연출하면서 이 작업 방식의 장점을 깨달았다고. 정 감독은 "제가 쓰면 너무 내 자식이고, 내 머릿속에서 나온 거라서 수정도 잘 못 한다. 장단점이 안 보인다. 남이 쓴 글을 보니, 흐름에서 뭐가 맞고 안 맞는지, 어디에 힘을 주고 빼야 할지가 잘 보이고 수정하기도 수월하더라"라고 전했다.

이어, "한 작품을 2~3년씩 잡고 있으면 객관화가 흐려지는 시점이 오지 않나"라며 "요즘 글을 수정하고 있는데 훨씬 더 편하고 훨씬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한 번쯤은 남의 글로 연출해 보는 것도 되게 중요한 것 같다. 만약 다른 사람 글이었다면 '비치온더비치'도 연출을 더 잘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위쪽부터 단편 '내가어때섷ㅎㅎ', '조인성을 좋아하세요'와 옴니버스 영화 '너와 극장에서'에 나온 정가영 감독 (사진=각 제작사 제공)
정 감독이 가장 고민하는 부분은 뭘까. 그는 "제가 10점짜리라고 생각하고 찍으면 6점짜리라고들 한다. 전 제 영화가 나오면 누군가에게 심하게 공격받거나, 세상이 뒤집어질 줄 알았다. 저는 작가로서 영화의 발칙성을 더 기대한 거다. 근데 사람들은 그냥 '발칙하다', '재밌네' 이렇게 받아들이더라"라고 말했다.

정 감독은 "여러 번의 경험을 통해서 내가 15~20점짜리 영화를 만들어야 사람들이 10점이라고 봐준다는 걸 알았다. 더 많이 발칙성을 가지고 그 안에서 친절하게 재미를 주는 방식으로 작업해야겠다는 고민을 요즘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강의에서도 몇 차례 언급했듯, 정 감독은 내놓은 작품이 '잘 되는 것'을 진심으로 바랐다. '도발적인 감독', '욕망에 충실한 여성' 등의 호명은 불편하지 않기 때문에 '그냥 그렇게 보셨나 보다' 하고 넘길 수 있다고. 그를 가장 불편하게 하는 건 "영화가 망하는 것"이다.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이런 건 모르겠고, 제 영화를 많이 봐주기를 바라죠."

도달하고 싶은 목표는 '관객 500만 돌파'다. 정 감독은 "지금 상업영화 준비하고 있는데 첫 작품 안 되면 두 번째 상업영화 하기가 거의 불가능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엄청나게 대박적인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