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가은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것, 아이들 이야기"

[여성 감독 강좌 시즌 2-⑤] '콩나물', '우리들' 윤가은 감독

"여성 감독들도 역사의 무게가 쌓이지만 여성 감독이 자기 작품을 깊이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은 영화제 정도로 한정되는 것 같다." 한국예술종합학교 트랜스: 아시아영상문화연구소 김소영 소장의 말이다. 지난해 여성 감독의 '현재'를 살피고 그들이 가진 고유의 작가성을 탐구하기 위해 마련됐던 '여성 영화감독 초청 연속강좌'가 시즌 2로 돌아왔다. 3월 13일부터 4월 24일까지 총 6명의 여성 감독을 만나보자. [편집자 주]

윤가은 감독 (사진=아토 제공)
엄청나게 화가 난 여고생이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무작정 적의 집에 쳐들어가고, 거기서 뜻밖의 아이들을 만나는 이야기('손님'), 할아버지의 제삿날 콩나물 심부름을 하러 나가는 7살 소녀 보리의 홀로 떠나는 여행('콩나물'), 사랑-미움-질투 등 모든 감정이 휘몰아치는 초등학생 세 명의 이야기('우리들')까지… 윤가은 감독의 영화에서는 어린이와 청소년이 빠지지 않았다. 그것도 주변 인물이 아니라 이야기를 끌고 가는 주인공이었다.

윤 감독은 아이들 이야기를 꾸준히 다루는 것을 '개인의 취향'이라고 말했다. 성장소설과 성장영화를 좋아했던 유년기를 보냈기에, 자기도 모르게 문화적 토양이 그런 식으로 길러진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단다. 또한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것'이 아이들 이야기라고 밝혔다.

17일 오후, 서울 성북구 석관동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114호에서 '여성 영화감독 초청 연속강좌' 시즌 2 다섯 번째 강의가 열렸다. 이날 주인공은 영화 '우리들'로 잘 알려진 윤가은 감독이었다.

윤 감독은 '손님'으로 제13회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SIYFF비전상, 제34회 클레르몽페랑 국제단편영화제 국제경쟁부문 대상 등을, '콩나물'로 제31회 부산국제단편영화제 3관왕, 제8회 대단한 단편영화제 2관왕 등을, '우리들'로 제31회 청룡영화상과 제25회 부일영화상의 신인감독상은 물론 제4회 들꽃영화상 대상, 제53회 백상예술대상 각본상 등을 받았다.

윤 감독은 중심이 아닌 구석에 있었던, 혹은 그 작은 구석마저 허용되지 않았던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해, 절대 단순하지 않은 아이들의 세계를 세심하게 살폈다.

아이들, 그중에서도 여자 아이들을 주요 캐릭터로 만들어 영화를 만드는 이유를 묻자, 윤 감독은 "저한테는 어떤 의식적인 행동이 아닌 거다. '왜 여성 이야기를 계속하세요?'란 질문은 아직도 제게 적응이 잘 안 되는 질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남자 주인공 이야기를 사실 써 본 적은 없다. '난 여자 (주인공) 이야기만 쓸 거야!' 이게 아니라, 그냥 제가 여자로 살아와서 저한테는 너무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저한테 가장 편하고 자연스러운 것을 하고 싶고, 저 스스로 공감을 더 잘하고 싶어서 선택한 게 여성 이야기였다"고 설명했다.

윤 감독은 "아이들을 다루는 데는 취향도 연결된 것 같다. 제가 일단 애들을 되게 좋아한다"면서 "좋아했던 영화도 대부분 성장 가족영화였고, 그게 제 토양에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고 전했다.

윤가은 감독의 대표작 '우리들'. '우리들'은 제4회 들꽃영화상 대상을 비롯해 각종 상을 석권했다. (사진=아토 제공)
"저도 '어벤져스'를 기다리고 있고 좀비 영화를 되게 좋아하는 성향은 다 있는데, 영화적으로 창작자로서 고민한 시기가 되게 길었어요. 어떤 이야기를 제가 잘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되게 많이 했죠. 스스로 되게 훌륭한 비주얼리스트도 아니고 최동훈 감독님처럼 정말 뛰어난 이야기를 하는, 메인플롯 서브플롯 있고 다양한 주인공들이 이야기를 펼치는 걸 보는 걸 좋아하지 제가 할 수 있진 않고… 박찬욱 감독님처럼 너무나 아름다운 영상을 찍을 수도 없고. '그럼 난 영화에서 뭘 해야 하지?' 고민을 되게 오랜 시간 했고, 그 과정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 테마를 찾은 것이 아이들을 좋아하는 저의 성향인 것 같아요.

안 그런 영화도 있는데 최근 10년~20년 새 영화에서는 아이들이 더 많이 배제됐고, 그 아이들을 진짜 살아있는 아이들로 그리는 영화가 별로 없었어요. 어린 내 마음을 달래주고 위로해주고 공감해주었던 영화가 (지금은) 왜 안 나오지? 하는 느낌이었어요. 또,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이들 이야기가 아닐까 했고요. 저는 제가 이미 자란 어른이고, 아이들은 여기(다른 곳에) 있고 그 세계를 그린다고 생각 안 해 봤어요, 한 번도. 사실 제 얘기를 한다는 심정으로 했던 것 같아요. 애들은 말할 수 있는 창구가 없으니까 아직 억울한 게 있는 거죠. 크면서 당했던 여러 가지 일들, 다 말 못 한 게 있는데 그걸 이 기회를 통해서 하는 거죠. 되게 다층적인 마음이에요."

윤 감독은 "저는 제가 공감이 갈 만한 인물을 쓰는 게 더 편하고 좋아하다 보니까 어쩔 수 없이 (제가 창조한 인물에) 제가 들어가더라. 특히 주인공에. 이렇게 계속하는 거 맞나? 하고 생각한다. 작품 편수가 쌓이다 보니까 더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고 전했다.

또한 윤 감독은 캐스팅과 캐릭터 이름 짓기에 관한 이야기도 들려줬다. 윤 감독은 "캐스팅이 제일 어려운 것 같다. 진짜 제일 어렵다. 아니, 시나리오가 제일 어려운데 시나리오 다음으로 캐스팅이 어려운 것 같다. 저 개인 생각이지만 영화가 100이라면 시나리오와 캐스팅 합쳐서 95 정도는 되지 않나 생각한다. 나머지 5를 저와 스태프들이 하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윤 감독은 캐스팅할 때 외적인 이미지를 중시하는 편은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제일 중요한 건 저랑 얘기할 수 있나, 하는 것"이라며 "대화가 통하는 친구들이 우선"이라고 밝혔다. '여럿이 같이 있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중점적으로 본다고.

윤 감독은 "이름이 안 지어지면 시작을 못 할 정도다. 한 달이나 고민한 적도 있다"면서 "작은 영화의 섭리 상 해외 시장을 생각 안 할 수가 없다. 부르기 쉬운 이름이어야 사람들이 부를 때도 좋고, 자막으로 쓰기도 좋아서 제 등장인물 이름은 받침이 잘 없고 부르기 쉽다"고 밝혔다. '우리들'의 선이는 험난한 상황을 헤쳐가야 하니까 빛(sun, 태양빛)을 주고 싶은 마음으로 지었다.

요즘 그의 고민은 작품을 '1인칭'으로만 가져가는 자신이 스타일에 관한 것이다. 윤 감독은 "'우리들'을 생각해 보면 모든 씬에 선이가 나온다. 항상 그랬던 것 같다. 모든 씬에 주인공이 다 나온다. 선이(최수인 분)가 이럴 때 한편 지아(설혜인 분)는? 이럴 수도 있는데 전 그게 잘 안 되더라"라고 설명했다.

윤 감독은 "좋은 작품을 보면 꼭 1인칭뿐만 아니라 (여러 인물을) 다층적으로 잘 그려나가시는 감독님들이 많은데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까 그게 저에게 남은 숙제 같다. 아니면 아예 정말 더 1인칭을 잘할 수는 없을까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며 "열심히 하겠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