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감독 강좌 시즌 2-③] '소공녀', '키스가 죄' 전고운 감독

"여성 감독들도 역사의 무게가 쌓이지만 여성 감독이 자기 작품을 깊이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은 영화제 정도로 한정되는 것 같다." 한국예술종합학교 트랜스: 아시아영상문화연구소 김소영 소장의 말이다. 지난해 여성 감독의 '현재'를 살피고 그들이 가진 고유의 작가성을 탐구하기 위해 마련됐던 '여성 영화감독 초청 연속강좌'가 시즌 2로 돌아왔다. 3월 13일부터 4월 24일까지 총 6명의 여성 감독을 만나보자. [편집자 주]

3일 오후, 서울 성북구 석관동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114호에서 '여성 영화감독 초청 연속강좌' 시즌 2 세 번째 강의가 열렸다. 이날 주인공은 '소공녀' 전고운 감독이었다. (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
전고운 감독은 '내게 사랑은 너무 써'(2008), '배드신'(2012) 등 단편을 선보인 후 지난해 '소공녀'로 첫 장편영화를 연출했다.

전 감독이 내놓은 작품은 평단의 좋은 반응을 받았다. '내게 사랑은 너무 써'로 제1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아시아 단편 경선 우수상을 받았다.

첫 장편인 '소공녀'는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CGV아트하우스상, 제43회 서울독립영화제 관객상을 비롯해 제27회 부일영화상, 제55회 대종상영화제, 제38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제38회 청룡영화상에서 신인감독상을 탔고, 제19회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각본상도 받았다.

한 잔의 위스키, 한 모금의 담배, 애인 한솔(안재홍 분)만 있으면 더 바랄 것이 없다는 가사 도우미 미소(이솜 분)의 이야기를 그린 '소공녀'는 6만여 명(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 5만 9460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관객들은 '소공녀'에 공감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작품을 읽어냈다.

3일 오후, 서울 성북구 석관동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114호에서 '여성 영화감독 초청 연속강좌' 시즌 2 세 번째 강의가 열렸다. 전고운 감독은 '소공녀'를 쓸 때도 여느 글쓰기와 마찬가지로 고통스러워서 당시의 기억을 빨리 잊었다고 말했다.

전 감독은 '소공녀'가 '담배 피우는 여성'이란 이미지에서 출발했다고 밝혔다. 보통 한국 영화에서 담배 피우는 여성은 '타짜'의 정마담 같이 강렬한 캐릭터로 나타나는 등 '평범성'과는 거리가 먼데, '그냥 자연스럽게 담배 피우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소공녀'에 담긴 코미디적인 부분도 영화를 극장에 올리기 위한 자신만의 '타협'이었다고 전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면서 느낀 걸 어떻게 하면 '여성영화'라고 난도질당하지 않고 더 많은 관객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했다.

'여성영화'를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이 원인이었다. 여성영화제 수상작이라고 하면 "아~" 하면서 주류 영화제에서 인정받은 게 아니라는 듯 틀 지우는 태도를 마주해, "여성이 주인공이지만 '이거 여성영화야'라고 떠들지 않는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지난해 3월 개봉한 영화 '소공녀' (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
"('소공녀'에서) 밴드 얘기도 정말 쓰기 싫었어요. 설정 자체가 납작하잖아요. 근데 덜 어렵게, 최대한 쉽게 전달해야만 했어요. 이 영화가 극장에 가는 게 목표였거든요. 아무도 투자를 안 하고 (웃음) 영화를 만들어도 배급하겠다는 데도 없고. 내가 이긴다, 내가 이 게임에서 이기고 말겠다는 일념 하에 밴드 설정을 넣었죠."

남성 감독은 어떤 이야기를 써도 '본인 경험담이냐?'라는 질문을 좀처럼 듣지 않는데, 여성 감독이 여성 이야기를 다루면 '본인 이야기냐'는 질문이 꼭 따라오는 것. 전 감독도 '너무 많이' 경험한 일이다. 그는 "그래서 다음번엔 살인 이야기를 써 볼까 한다. 아무도 그 질문을 하지 못하게"라고 말해 폭소가 터졌다.

전 감독은 창작욕이 왕성한 스타일은 아니라고 밝혔다. 그는 "저는 문지방을 넘어서는 게 진짜 힘들다. 집 안에 있는 걸 좋아하고 집 밖으로 나가는 걸 너무 어려워하는 사람"이라며 "저는 평소 '로망'도 없는 것 같다. 주변 감독들 보면 하고 싶은 게 많다고 한다. 나는 잘 모르겠는데"라고 말했다.

"다들 해 보고 싶어 하는 게 많은 이유가 궁금해요. 음… 저를 쓰게 하는 건 마감? (일동 웃음) '소공녀'도 광화문시네마의 마지막 사람이 저였어요. '야, 이제 너 (작품) 해야지' 해서 했어요. 더 이상 뺄 수가 없었어요. 앉아서 뭘 쓰지, 해서 ('소공녀'를) 쓴 것 같아요. 그때 아까 말한 요소들이 있었고, 왜 이 힘든 '집' 얘기를 아무도 하지 않지? 이러면서 썼어요. '키스가 죄'라는 것도 돈을 벌기 위해 썼죠. (웃음) 단편은 길게는 6개월, 짧게는 3개월 안에 마칠 수 있으니까요. 그때도 울었던 것 같아요, 쓸 게 없어서. 마감이 있으면 생각나더라고요. 예전 경험들을 떠올리고, 분노의 서랍을 열게 된달까요? 그러고 보면 분노가 저의 동력인 것 같기도 해요. 제가 여성인 게 너무 힘들었어요. 받지 않아야 할 질문을 받고, 여성 감독이라는 타이틀, 여성영화라는 타이틀도 귀찮았죠. 나는 그냥 영화를 하고, 그냥 감독인데. 근데 요즘은 좀 좋다고 생각해요. 분노가 마르지 않는 샘이 있는 느낌이랄까요. (웃음)"

전 감독의 차기작은 내일(5일) 넷플릭스에서 바로 만나볼 수 있다. 전 감독은 아이유(이지은)이라는 한 배우를 두고 네 감독이 각자의 시선으로 풀어낸 단편 4편을 묶은 '페르소나'에 참여했다. 그가 연출한 '키스가 죄'는 소녀들의 발칙한 복수극을 다뤘고, 아이유와 신달기가 출연한다.

내일(5일) 넷플릭스를 통해 최초 공개되는 오리지널 시리즈 '페르소나'의 '키스가 죄' (사진=넷플릭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