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군에게 선물?" 농담, 왜 해커는 진지해졌을까

'어지간한 걸로는 안 돼' NC 포수 김태군(왼쪽)은 올 시즌을 끝으로 군에 입대해 이번 포스트시즌이 복무 전 마지막이다. 사진은 지난 8일 롯데와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호투를 펼친 선발 에릭 해커를 격려하는 모습.(사진=NC)
농담처럼 물었습니다. 그러나 뜻밖에 진지한 대답이 나와 질문을 던진 제가 자못 당황스러운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그만큼 애틋하고 고마운 존재라는 것이겠죠. NC 외국인 에이스 에릭 해커(34)에게 포수 김태군(28)이 그런 사람인 겁니다.

해커는 롯데와 '2017 타이어뱅크 KBO 리그' 준플레이오프(PO)의 영웅이었습니다. 1차전에서 7이닝 1실점 쾌투로 9-2 연장 승리의 발판을 놓은 데 이어 마지막 5차전에서도 6⅓이닝 무실점 역투로 팀의 PO 진출을 이끌었습니다.

특히 5차전은 부담이 컸습니다. 2승2패로 맞선 가운데 시리즈가 끝나는 경기. 더욱이 1차전과 마찬가지로 롯데의 열광적인 팬들이 운집한 부산 사직구장 원정이었습니다. 여기에 해커는 지난 14일 4차전 등판을 미루고 5차전을 고집한 터. 자칫 패배라도 한다면 원성을 들을 만했습니다.

하지만 에이스는 달랐습니다. 압박감이 들 만한 상황에서도 삼진을 무려 8개를 솎아내며 4피안타 2사사구로 롯데 타선을 잠재웠습니다. 투구수는 1차전과 똑같은 104개. 1차전에서는 비록 승리와 인연이 없었지만 5차전은 9-0 완승의 승리투수가 됐습니다. 이런 역투로 해커는 시리즈 MVP에 올랐고, 상금 200만 원이 부수입으로 따라왔습니다.

'짭짤한 부수입' NC 해커가 15일 롯데와 준플레이오프 5차전을 승리로 이끈 뒤 시리즈 MVP에 선정돼 임채섭 경기감독관에게 상패를 받고 있다.(사직=NC)
혼자의 힘이 아니었습니다. 포수 김태군의 능수능란한 리드가 아니었다면 쉽지 않았던 호투였습니다. 경기 후 해커도 "사실 비도 내리고 롯데 팬들의 열성적인 응원이 있어 어려운 경기였다"면서도 "그러나 팀 동료들의 도움, 특히 김태군의 좋은 리드가 있었기에 이길 수 있었다"고 공을 돌렸습니다.

실제로 김태군의 공은 컸습니다. 경기 후 김태군은 "1차전에서는 체인지업을 많이 써서 효과를 봤다"면서 "그래서 롯데 타자들이 노릴 것을 대비해 초반에 슬라이더를 많이 던졌고 이후에 체인지업으로 변화를 줬다"고 패턴을 설명했습니다.

해커는 1차전보다 이닝은 적었지만 탈삼진은 2개가 더 많았고, 피안타도 8개에서 절반이나 줄었습니다. 롯데 타자들은 준PO에서 해커의 공을 두 번째 상대했지만 오히려 더 공략을 하지 못했습니다. 김태군의 연구와 분석이 돋보이는 대목.

그렇다면 해커의 MVP 상금 중 김태군의 지분이 어느 정도 있는 것은 아닐까. 해커가 한 턱 거하게 쏘든, 선물을 하든 해야 하는 건 아닐까. 이에 대해 김태군은 "준PO도 잘했지만 다음 번에도 해커를 MVP로 만들어 더 큰 걸 받아낼 것"이라고 예의 입담을 풀어냈습니다. 농담처럼 말했지만 원대한 야망이 담긴 '빅 픽처'(?)였습니다.

김태군의 말을 전해들은 해커는 그러나 이를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해커는 "나는 정말 운이 좋은 투수"라고 운을 뗐습니다. "한국에 오자마자 김태군이라는 좋은 포수를 만나 5년 동안 함께 했다"면서 "그렇기에 이렇게 KBO 리그와 NC에서 오래 뛰고 있다"고 고마움을 드러냈습니다.

'잘 했어, 해커' 해커가 롯데와 준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7회 마운드를 내려가자 김태군이 격려하고 있다.(사직=NC)
해커는 신생팀 NC가 1군에 들어온 2013년부터 '공룡 군단'의 일원으로 함께 했습니다. 첫 시즌 평균자책점(ERA) 3.63을 찍었지만 승운이 따르지 않아 4승11패에 머물렀습니다. 이듬해도 8승8패 ERA 4.01, 그러나 2015년 19승5패 ERA 3.13으로 리그를 평정했고, 지난해와 올해 부상이 있었지만 2년 동안 25승을 거뒀습니다.

그 영광의 순간을 김태군과 함께 한 겁니다. 김태군 역시 해커와 같은 2013년 NC에 합류했습니다. 2008년 LG에 입단한 김태군은 백업 포수로 뛰다 2013년 NC로 이적했습니다. 이때 해커와 처음 만난 김태군은 주전으로 도약해 최근 4년 연속 NC의 가을야구를 이끌고 있습니다. 해커는 "처음부터 좋은 포수를 만나 5년 연속 같이 뛴 외인 선수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있다면 7년째 호흡을 맞추고 있는 두산 더스틴 니퍼트-양의지가 있을 겁니다.)

이처럼 해커가 김태군을 각별하게 여기는 것은 아마도 올해가 둘의 마지막 시즌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있어서일 겁니다. 김태군에게 이번 가을은 군 입대 전 마지막입니다. 올 시즌 뒤 김태군은 경찰 야구단에 입단해 군 복무할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만큼 본인도 "올 시즌 전부터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임했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만큼 더 절실하게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물론 복무를 마친 뒤 아마도 2019시즌 후반기에는 복귀할 수 있을 겁니다. 다만 그때 해커가 NC에 남아 있을지는 장담하기 쉽지 않습니다. 해커는 올해도 리그 정상급 구위를 뽐내고 있지만 2019년이면 36살의 노장이 됩니다. 그때도 재계약이 된다면 둘은 재회할 수 있지만 그러지 못할 가능성도 있는 겁니다.

'이런 날 또 오겠지...' 지난달 30일 넥센과 홈 경기를 앞두고 김태군, 해커 등 NC 선수들이 애국가가 흐르는 동안 예를 갖추는 모습. 이날은 이호준의 은퇴 경기로 열려 등번호가 27번으로 통일됐다.(사진=NC)
그런 만큼 올 가을은 둘에게 더욱 특별한 포스트시즌이 될 겁니다. 김태군도, 해커도 두산과 PO에 대한 각오를 다졌습니다. 김태군은 "두산에는 양의지라는 훌륭한 포수가 있다. 나보다 2살 형인데 정말 많이 배워야 할 선수"라면서도 "단기전에 포수의 중요성이 큰 만큼 열심히 해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해커도 "두산은 강한 팀이지만 최선을 다해 경기하겠다"고 이를 앙다물었습니다. 한솥밥을 먹은 지 5년째, NC의 이 애틋한 커플이 '입대 전' 마지막 가을야구에서 어떤 소중한 추억을 만들지 지켜볼 일입니다.

p.s-해커는 농담처럼 던진 질문에 사뭇 진지한 태도로 한참을 답했습니다. 그러다 준PO MVP 인터뷰를 위해 기자회견실로 이동해야 하는 순간이 왔습니다. 원래 질문에 대한 답변은 듣지 못할 찰나.

다시 "김태군에게 선물을 할 것이냐"는 질문을 환기시키자 해커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두고 봅시다"고만 말했습니다. 김태군이 해커를 염두에 두고 그리고 있는 '빅 픽처'가 완성될지 궁금합니다.

'감독님, 이제 됐죠?' 해커가 15일 롯데와 준플레이오프를 승리로 이끈 뒤 김경문 감독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사직=NC)
또 p.s-해커는 "5년 동안 좋은 감독과 함께 한 것도 행운이었다"고도 했습니다. 준PO에서 해커는 비로 13일로 연기된 4차전 선발을 고사하고 5차전 출전을 고수해 김 감독의 애를 태운 바 있습니다. 김 감독은 "선수의 루틴을 존중해야 한다"면서도 "감독으로서는 '선수가 언제든 OK'라고 하면 좋은데…"라며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속은 타도 해커는 또 제몫을 해줄 겁니다, 감독님. 해커라는 투수를 만난 것도 김태군과 김 감독에게는 행운일 겁니다.